국가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영어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많이 한다. 그들의 pet peeve(그들이 자주 들먹이는 이유)는 영어 교육에 드는 비용, 특히 각 학부모가 개별적으로 쓰는 비용(사교육비)은 높은 반면에 돌아오는 결과는 미미하다는 것이다. 원어민, 그것도 IVY League(SKY와 같은 명문대)의 졸업생과 같은, 고소득층이 쓸만한 영어구사능력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혹여, 원어민 수준을 적당히 open market(재래식 시장)에서 물건 흥정하고,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할 수 있는 정도로 착각하고 있었다면 smell the coffee(정신차리시)라고 말씀 드릴 수밖에 없다. ChatGPT와 같은 AI의 실시간 번역 및 통역(그렇다, 이제는 typing할 필요도 없이 말로만 해도 잘 알아 듣는다.)의 질이 올라갈수록 영어를 구사하는 능력에 대한 기대치는 올라가기만 하지 결코 떨어지지는 않는다. 나 조차도 구글맵과 다른 지도 앱을 이용하여 길 찾기를 하고 택시를 부르는 등 일상 업무를 하지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한국어를 못해서도 아니고 타인을 불신하기 때문도 아니다. 경제 구조가 고도화될 수록 정확한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더 중요한 당위성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돈이고 정보가 돈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밀도가 높은 정보의 교환(high density information exchange)을 선호한다. 정확하고 간결하며 필요하면 무한대에 가까운 근거 자료를 즉각적으로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제시한 정보와 이어질 행동이 일치할 것이라는 신뢰성(trust)도 중요하다. 그러니 고도의 정치적 수사(political rhetoric)나 예술적인 비유(artistic symbolism)는 특정 장소와 상황(occasion)에 한정하고 오히려 일반 대중의 공적 논의 공간에서의 대화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며 상업적인 성격을 띄게 된다. 그러니 적당히 눈치껏 손짓, 발짓하면서 넘겼던 시대는 저물고, 미묘한 뉴앙스의 차이에 집착하며 문장 길이가 늘어지는 것도 조던 피터슨 처럼 personal branding의 일부가 아니라면 기만으로 비난받으며, 끝까지 들어야 진짜 의도를 알 수 있는 전통적인 한국식 말하기 또는 글쓰기는 passe(이미 철 지난 유행)이며 청중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나아가 모욕적이기까지 한 불쾌한 행위이다.
20여년 전, 터키의 길거리에서 흥쾌히 한 눈에 봐도 이질적인 여행객인 나를 가게 안으로 초대해 차를 대접하고 여러가지 수다를 나누었던 친절한 아저씨와 아줌마는 이미 장사를 접고 은퇴했을 것이다.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하루에 한 명 올까말까 한 고객을 정성들여 영업하는 방식은 이미 대다수의 상점에서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러기에는 최저임금이 너무 상승했고 부동산 가격도 올랐으며 무엇보다 고객의 취향 자체가 바뀌었다. 올리브영과 같은 프렌차이즈에서는 새로운 고객이 상점에 들어오면 인사를 하고 쇼핑 바구니로 안내하되 쫓아 다니거나 도와주겠다는 등 적극적 호객행위를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고객이 거부감을 느끼고 도망간다는 게 정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돈이 있으니까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옆에서 수발을 들어주는 하인을 일시적으로 고용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은 더이상 사회적 미덕이 아니다. 이런 사회적 규범(norm)의 변화가 개인적으로 아쉬울 수는 있고, 오히려 역으로 그런 여유있는(마음대로 귀족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상업화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게 다수가 좋아하거나 긍정하는 소통의 방식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결과이다. 그리고 앞으로 정치적 이상으로서 민주주의가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는 한 계속될 현상이다.
공적 공간(public space)에서의 담론을 꺼낸 이유는 영어 소통능력에 대한 기대치가 계속 올라가는 이유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표현 언어가 정확하고 간결하기 위해서는 어휘가 많아야 한다. 영어는 전 세계 그 어떤 언어보다 어휘가 많다. 끝임없이 다른 언어의 말을 흡수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휘 채택에 있어 열린 구조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틴어에 근거하든, 고대 그리스어에서 따왔든, 심지어 인스타그램이나 틱톡과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유행어가 되었든 사람들이 쓰고 언론과 사전에서 사용되는 순간 "공식적" 단어로 인정 받는다. 대한민국이나 프랑스처럼 특정 기관이 권위를 갖고 인정하며 정확한 사용과 비정확한 사용을 구분해주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어휘는 거의 실시간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러니 표현할 수 있는 재료가 부족해서, 즉 적당한 단어가 없어서 외국어를 어쩔 수 없이 차용해와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애써 번역을 하면서 본 의미가 잘 사는지, 잘못된 번역으로 오히려 오해가 생기는 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정확도를 요구하는 상황일 수록 영어에 의존을 하고 있다.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계화 때문이 아니다. 누구도 공공연하게 인정하기는 싫지만 한국어의 경직된 구조가 필요한만큼 새로운 어휘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자어도 배척하고 "순수" 토종 한국어를 지향하는 국민적 정서를 감안하면 이러한 한계점은 쉽게 극복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십대 때 소위 말하는 지식층이 습관적으로 영어를 섞어서 말하는 행태를 비판적으로 보고 혼자서라도 순수 한국어에 의존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순수 우리말 사전도 사봤고 이광수 소설가의 추천대로 국어 표현을 보이는 대로 모으고 활용하려 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에 포기했다. 순수 우리말 사전은 북한말이 과반수였고 내가 읽는 책의 절대 다수가 어차피 영어 원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재필, 윤치호, 이승만과 같은 시대적 전환기의 지식인이 영어로 일기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내 아집은 자연스럽게 꺾였다. 현재가 이들이 살던 시대만큼 급변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확장적이고 열린 구조를 가진 영어를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고 그만큼 영어 어휘력에 대한 요구도 증가하고 있다. 교육부는 어느 한 순간부터 필수 어휘 목록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그냥 무능해서가 아니다. 필수 어휘 목록을 발표하는 순간부터 이미 쓸모없어(obsolete)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영어는 어휘가 확장되는만큼 동시에 문장 구조가 정형화되어 있다. 조사가 없는 것이 단점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위치에 기반한 단어 배치가 가지고 있는 힘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이다. 연구자에 따라 영어 문장 형식을 20여개까지 확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성문영어에서 소개된 5형식의 문장구조는 원어민이 아닌 비원어민도 직관적으로 문장을 해석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제공하였다. 20여개와 5개는 큰 차이가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시는 분은 한국어 문장을 그러면 몇 개의 형식으로 나눌 것인지를 되묻고 싶다. 한국어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는게 불편하다면 고대 라틴어는 어떠한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릴 수는 있으나, 영어의 문장 형식은 대체로 단순하고 관계사를 통해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하다. 특히 상업적 공간에서 유용하다. 십년 전에 국제 화물을 나르는 컨테이너를 관리하는 분과 대화를 나눴다. 나는 당연히 그분이 영어 학습을 하는 이유가 업무적 협의에 필요한 소통력을 키우기 위해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업무는 거의 다 정형화된 틀 안에서 어휘만 바꿔 쓰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게 체계화(systemization)와 정형화(standardization)가 가지는 힘이다.
약간의 여담인데, 영어교육이 정상화가 되려면 영어가 선별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앞서 말한 화물회사 직원과의 대화를 이어가보자 한다. 그러면 왜 새벽에 학원에 나와서 이렇게 고생을 하시냐고 물었더니 승진 점수를 채우기 위해서란다. 토익 점수를 높게 받을 수록 승진 가능성이 늘어냐는 거냐고 물으니까 아니란다. 최저 점수만 넘기면 된단다. 이게 뭔 논리인가 봤더니 동기가 모두 승진할 수는 없으니 일종의 "자격"(이라 읽고 "면피"라고 해석)을 부여하는 도구로 공인 어학 점수가 있으면 되는 거란다. 영어가 선별도구가 되어서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각 조직별로 필요한 용도로 쓰면 된다. 다만 그렇게 하는 이유가 업무 성과 기반 승진(merit-based promotion)이 불가능한 사회적 구조 때문이라면 곤란하다. 성과에 기반한 계층적 이동이 가장 활발할 때 생산성이 증대하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더 싼 가격에 더 많은 것을 누리는 실질적 복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발 영어를 선별적 도구로 사용할 수 없게 정부가 규제하거나 보편적 영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억지 논리는 쓰지 말자. 영어가 아니면 다른 언어(여기에는 코딩 언어도 포함된다. 그리고 광의에서는 수학도 언어라고 볼 수 있다.)가 선별적 도구로 쓰일 수밖에 없는 직종은 어떻게 할 것이며 보편적 영어 교육을(특히 저학년 대상 영어교육을) 확대했을 때 예상되는 부작용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되묻고 싶다. 어린 나이부터 영어 교육을 더 많이 하는 게 뭐가 나쁘냐는 분에게 이중언어를 하는 가정의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모국어 발달이 늦어진다는 것은 왜 무시하냐고 물어야 한다. 학생들의 독해력이 날로 떨어지고 있고,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더 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어교육 못지 않게, 아니 더 중요한 것은 모국어 교육일진데 국어교육을 강화하자는 내용은 왜 쏙 빼는지 우리는 의심해봐야 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교육 시장에서는 이미 국어 논술과 독서지도 등 국어 학습에 대한 보완책은 차고 넘친다. 민간 독서지도사 자격증은 아마도 요양보호사 다음으로 인기 있는 자격증일 것이다. 만만하다는 인식도 있지만 그만큼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어와 관련된 것은 상대적으로 싸다. 싸면서 효과도 좋다. 그렇다면 영어는 어떠한가? 비싸고 효과도 적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지도 않기에 외국어로 쓰이는 현실은 영어 사용이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게 힘들다. 즉, 몰입적 환경(emersive environment)이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게 비싸다는 뜻이다. 게다가, 학습 효과에 대한 기대치는 상향 평준화가 되어서 BTS와 같은 현지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이 기준이 되었다. 목표점이 하늘에 걸려 있으니 당연히 달성하기 쉽지 않다. 그러니 효과도 입증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그냥 영어를 습관으로 하라고 한다. 당장 효과가 안 보여도 무의식적으로 꾸준히 하다보면 운동처럼 우리가 더 좋은 삶을 사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기함할 일이다. 그렇다면 공공정책론에 의하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당연히 싸면서 효과도 좋은 것을 공공정책으로 선택해야 한다. 같은 100만원을 투자할 거라면, 특히 그것이 세금으로 충당하는 비용이라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큰 효과를,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일에 써야 한다. 그런데 많은 전문가들이 반대를 말하고 있다. 이게 도둑놈 심보 아닌가. 고비용 저효용을 떠맡으는 게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 정부는 민간에서 할 수 없는 일이나 꼭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이미 유초등을 위한 온갖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민간에서 뽑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왜 굳이 공교육에서 영어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는지를 우리는 물어야 한다. 그게 영어 공교육의 정상화가 논란에서 실질적 질적 향상으로 이어질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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